재생에너지 분야 원로들 “과거 사례 통해 잘못된 모습 반복하지 말아야"

▲ 호도 태양광 발전설비 설치공사 조감도. 90kw급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실트론(現sk실트론)과 세방전지, 금성산전(現ls산전)이 각각 셀과 연축전지, 인버터를 국산화했다.<동력자원부 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 종합분석보고서>

[이투뉴스]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는 1970년부터 1980년 사이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며 본격적으로 연구·개발이 이뤄졌다. 지금처럼 기후변화 대응이나 원전 폐지 등 친환경에너지 전환을 목적으로 재생에너지를 보급한 게 아니라 국가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기존 화석에너지를 대신할 ‘대체에너지’ 개발에 역점을 두었다. 두 차례의 심각한 석유파동을 경험한 정부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수급기반 조성을 위해 재생에너지의 지속가능성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다수 논문과 복수의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재생에너지 연구·개발 시기를 1987년 12월 4일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이 제정·공포된 후로 보고 있다. 해당 법에 따라 당시 대체에너지는 태양에너지(태양광·태양열), 바이오에너지, 풍력, 소수력, 연료전지, 석탄액화·가스화, 해양에너지, 폐기물에너지, 석탄에 석탄외의 물질을 혼합한 유동상 연료, 지열, 수소에너지 등 11개 에너지원으로 정의됐다.

같은 해 정부는 본격적인 대체에너지 기술개발을 위한 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을 착수했다. 또 관련법에 근거해 1988년 7월 30일 에너지관리공단(現 한국에너지공단)내 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부를 신설했고, 1989년 9월 대체에너지기술개발센터로 조직을 확대했다.  

물론 1987년 이전에도 대체에너지에 대한 연구·개발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기술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1964년부터 1987년까지 대체에너지 관련 수행연구과제는 모두 560건이었다. 바이오매스 관련 연구가 181개(32.3%)로 가장 많았고, 태양열 128개(22.9%), 태양광 94개(16.8%)등이었다. 대개 연구는 2차 석유파동(1978~1980년)직후 활발히 진행됐다.

▲ 실트론이 개발한 실리콘 태양전지와 연산 300kw급 태양전지 양산설비<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 종합분석 보고서>

■ 초창기 대체에너지 설치사례

▲ 강화도 아차분교 옥상에 있는 4kw급 태양광 발전설비

‘국내 풍력발전 기술 적용사례(경남호 에너지기술연구원 박사)’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국내 최초 풍력발전기는 1975년 3월22일 한국과학원(KAIS)이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어도(엇섬)에 설치됐다. 한국과학원 이정오 박사팀이 3년간 연구 끝에 11m 철탑 위에 2kW급 풍력발전기를 세웠다. 당시 풍력발전기는 사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돌풍에 블레이드가 자동으로 접히는 구조로 제작됐다. 풍력발전기는 엇섬 마을 37개 가구에 전력을 공급했다.

다만 2005년 신재생에너지백서에는 1950년대 양수용으로 강원도 난곡 독일농장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서구식 풍차가 이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양수용 풍차는 1972년 경북 울진군에 5kW급 설비가, 1974년 6월 전북 부안군과 1976년 1월 경기 옹진군 영종면에 1kW급 설비가 세워졌다. 국내 최초 상업용 발전소는 제주도청이 1998년 3월 제주 행원리에 설치한 600kW급 풍력발전기(제작사: 베스타스)이다.

태양광의 경우 국내 최초 태양광발전설비는 1980년 6월 4일 강화도 아차분교 옥상위에 설치된 4kW급 태양광 발전설비다. 당시 TV를 켜는 수준이었으나 60여 가구가 사용하기는 부족했다. 1987년 관련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이밖에 태양열은 농촌진흥청이 1963년부터 1966년까지 태양열 집열이용기술을 연구했고, 1975년 6월부터 11월까지 대한주택공사 연구팀이 ‘태양의 집’ 시험연구를 위해 주택전시실에 외산 집열기를 설치·실험한 바 있다. 바이오매스는 1969년 농촌진흥청이 농가 보조연료 사용을 위해 소규모 메탄가스 발전소를 연차적으로 보급했다. 1969년 444기, 1970년 740기, 1975년에는 2만3488기에 달했다.

비공식적으로 일제 강점기에도 폐기물에서 메탄가스를 발생시켜 활용했다는 게 구전으로 전해진다. 소수력발전은 1950년 전남 강진군 도암면 향촌마을에 소계곡 수력발전용 프란시스 수차가 개발돼 130개 조명에 불을 켰다는 기록이 있다. 1954년 한국수력개발이 창립돼 광주, 순천, 양평 등 농촌지역에서 기존 물레방아를 프란시스 수차로 교체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 본격적인 대체에너지 기술개발(태양광‧풍력 중심으로)

▲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개발한 20kw급 소형 수평축 풍력발전시스템. 1992년 제주 월령지구에 설치돼 국내 풍력기술개발의 시초로서 의미를 갖는다<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 종합분석 보고서>

정부 주도의 본격적인 대체에너지 개발은 동력자원부와 에너지관리공단 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부가 주도해 1988년 5월 시작한 ‘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으로 볼 수 있다. 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은 ▶범국가적 연구사업 ▶기업주도 연구사업 ▶일반연구사업 등으로 구분됐다.

에너지원별 1단계 개발기간인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모두 164개 연구 과제를 수행했고, 127개 과제(중단사업 8개 포함)가 종료됐다. 특히 범국가적 연구 사업은 전체 연구개발비 313억원에서 150억원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매우 높았다. ‘범국가적’이란 표현은 당시 대체에너지를 수출주도 사업으로 성장시키고, 중국, 몽골, 베트남 등과 협력 사업을 추진한다는 포부가 담은 사업명이다. 기술개발 후 해외에서 시장을 확보한다는 복안도 깔려있다.

범국가적 연구사업 중 태양광부문은 당시 충남 보령시 호도에 90kWp급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는 시범사업을 통해 각종 관련 설비를 국산화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이를 통해 1992년에 실트론(옛 LG실트론-현 SK실트론)이 국산 기술로 효율 12%이상 모듈 및 셀 양산체제(연간 300kW 생산)를 완비했다. 또 세방전지가 태양광발전을 통해 생산한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연축전지를 개발했다. LG계열의 금성산전(LS산전)도 호도에 설치할 태양광발전용 인버터를 생산하는 등 다수 업체가 태양광제품 국산화에 나섰다. 

이후 실트론은 1998년까지 장당 1.4W 모듈을 약 50만장 생산했다. 세방전지도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전남 여수시 하화도 60kW급 태양광 발전사업과 태양광가로등 시범보급사업에 참여하는 등 어느 정도 상용화단계까지 도달했다.

풍력부문은 1988~1991년까지 1단계 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에선 기업주도 연구사업으로 추진됐다. 초창기 목표는 풍력자원 조사‧분석 및 소형(20kW급 이하) 풍력 발전시스템 개발이 주  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1989년부터 1992년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국내 기술로 계통 연계용 20kW급 수평축 발전시스템 개발을 완료, 소형 풍력발전시스템 주요 부품을 국산화하고 설계기술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해당 풍력 발전시스템은 제주 월령지구에 설치‧가동돼 실증단계를 거치는 등 국내 풍력기술개발의 시초로서 의미를 갖는다.

특히 풍력부문은 2단계 사업기간(1992~1996년)에 복합소재업체 한국화이바가 도전장을 내밀면서 본격적인 연구개발이 진행된다. 한국화이바는 1992년 수직축 풍력발전시스템 개발 및 설치운영 실증사업을 통해 마라도에 50kW급 풍력발전설비를 설치한다.

이후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중대형 풍력발전시스템 개발 및 운용평가에 관한 연구’를 통해 복합소재 기업의 특성을 살려 블레이드(풍력날개)제작기술을 확보한다.

다만 전남 무안에서 개시된 시범사업을 살펴보면 1994년 FloWind사와 협력해 시험용 170.9kW급 풍력발전기를 개발한 후, 1996년 자체 제작한 300kW급 수직형 풍력발전기는 철거되는 불운을 맞는다. 이후 수평축 제품으로 변경해 1997년 존드(ZOND)사의 550kW급 풍력발전기를, 1999년 락어웨이(LagerWay)의 750kW급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등 자체적인 기술력 확보에는 무리가 따랐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이후부터 효성, 유니슨, 한진산업, 두산중공업, 현대중공업 등이 국산 풍력발전 개발을 위한 연구과제에 속속 참여했다.       

▲ 금성산전(現ls산전)이 개발한 단상 3kva급 계통연계형 태양광발전 컨버터<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 종합분석 보고서>
▲ 세방전지가 개발한 태양광발전용 연축전지 개량판<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 종합분석 보고서>

■ 대체에너지 기술개발에 대한 원로들의 아쉬움 
당시 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 시기를 회고하는 정부‧학계‧민간분야 원로들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아쉬움을 토로한다. 우선 초창기 개발업체들의 전문지식 부족과 도덕적 해이를 거론한다. 또 상대적으로 기술적 우위를 점하던 중국과 경쟁에서 현재 역전뿐 아니라 완전히 뒤쳐졌다는 낙담이 담겨있다.

오랜기간 풍력업계에 종사한 전문가는 “초창기에는 연구수행 도중 전기를 생산하는 풍력발전기가 아니라 전기로 움직이는 풍력발전기로 평가진들의 눈을 속이려는 웃지 못 할 사례도 있었다. 또 외산 제품을 들여와 국비를 타내거나 국가연구과제에서 저용량 풍력시스템 개발을 완료치 못했으면서 고용량 풍력시스템 개발과제를 동시 수행하는 수준 미달의 업체도 있었다”며 “국비를 들이는 국가R&D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또 본인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주먹구구식으로 제품을 만들고 폐기 처리해 국비를 낭비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런 사례들이 업계의 인식을 나쁘게 만들고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이자, 중요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비난했다.   

태양광업계 한 원로는 “당시 중국은 태양광‧풍력 등 모두 우리보다 기술측면에서 하위에 있었다. 한때는 중국 측에서 제발 도와달라며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낭비한 사이 위상이 역전됐다”며 씁쓸해했다.

또 “현재 효율, 가격, 제품신뢰도 측면에서 더욱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기 셀‧모듈제품은 현재처럼 20년 이상이 아닌 10~15년 수준이었다. 하지만 통계상에는 당시 설치한 발전소들이 여전히 잘 운영이 되고 있다고 집계된다. 현장에선 품질문제를 거론하게 된다. 이러한 사례들이 모여 산업 전반의 신뢰도를 낮춘다.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조언했다.   

당시 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에 참여했던 한 정부관계자는 잘못된 정책들이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고 탄식한다. 그는 “당시에도 마라도 등 도서지역에서 태양광과 풍력발전, 계간축열조, 연축전지, 디젤발전 등을 활용해 에너지 자립섬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섬 주민들의 수요패턴을 정밀하게 파악해 업체들이 적정 비율로 재생에너지설비와 디젤발전을 설치‧운용해야 했으나 당시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 탓에 결국 전력공급에 실패했다. 최근 백아도 등 에너지자립섬사업에 같은 문제가 발생한 바 있다. 과거 경험을 중시하지 않은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덕환 기자 hwan0324@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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