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태안 송전제약 현실화…당국-발전사 물밑협의
발전사별 천문학적 손실 불가피, 안일한 대응이 禍 키워

▲ (좌) 345kv 송전선로 (우)345kv 지중화 전력구 ⓒe2news db

[이투뉴스] 도로는 언제 개통될지 모르는데 자동차만 늘고 있다. 기존 도로를 이용하자니 이미 만성정체. 그런데도 이곳저곳서 새 차가 운행을 시작할 태세다. 반면 새로 뚫기로 한 도로는 민원에 부딪혀 개통일정이 불확실하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선 당장 가구당 운행대수 제한이 불가피해졌다. 송전선로가 부족해 발전소 정상가동이 어려워진 우리 전력계통을 도로와 자동차로 비유하면 이렇다. 그동안 도로(송전선로)를 까는 일은 한전, 차량 등록(전력수급계획)은 정부가 맡아 왔다. 도대체 당국은 이 지경이 되도록 무슨 일은 한 걸까.

수용성이 떨어진 송전선로 확충이 지체되는 가운데 일정대로 건설된 발전소가 속속 준공되면서 설비가 몰린 일부 지역부터 우려했던 송전제약(발전제약)이 현실화 되고 있다. 기(基)당 수조원을 들여 건설한 발전소가 전력을 실어나를 계통을 확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송전망이 확충되기까지 최소 수년간 이들 발전소의 파행운영은 불가피해 보인다. GW단위 대형 발전설비를 정상가동하지 못해 발생하는 예상손실은 천문학적 수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발전사들과 전력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묘수찾기가 쉽지 않다.

도화선의 불은 대규모 발전단지가 밀집한 충남지역에서 붙었다. 14.7GW 규모의 기존 발전소들이 신서산(당진)~신안성 765kV와 아산~화성 345kV 송전선로 등을 통해 수도권으로 전력을 수송하는 가운데 발전소 신·증설에 대응한 북당진~고덕 765kV·북당진~신탕정 345kV 송전선로 건설은 지역사회 반대로 기약없이 지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전 수급계획에 반영된 5GW규모 석탄·LNG 발전소가 추가로 상업운전(일부 예정)을 시작하면서 충남지역 송전망 부족 사태가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당면 현안이 됐다.

최근 1~2년 사이 당진·태안에 새로 들어선 발전설비는 동서발전 당진화력 9,10호기 2GW, 서부발전 태안화력 9,10호기 2GW, GS EPS 당진 4호기 900MW 등 모두 4.9GW에 달하며, 이미 설치된 가동설비도 당진화력 1~8호기 4GW, 태안화력 1~8호기 4GW, GS당진 1~3호기 1.4GW, 대산복합 460MW 등 10GW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 지역 전력망은 신설 발전소가 완공되기 이전부터 포화상태였다. 신안성행 765kV 송전선로에 문제가 생기면 3GW규모 발전력이 일시탈락(발전기를 보호를 위한 기동정지)할 만큼 계통이 취약하다는 당국의 진단을 받은 터였다.

이와 관련 송전사업자 한전과 계통운영자 전력거래소, 동서·서부·GS 등의 발전사들은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최근까지 4차례에 걸쳐 타개책 마련을 위한 물밑 협의를 벌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송전선로 조기확충이 현실적으로 난망한 만큼 변동하는 부하(수요)에 따라 언제 어떤 발전사가 얼마나 제 설비용량보다 발전량을 줄일 것인가로 논의가 모아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당국이 발전사별로 제약량을 어떻게 할당·분배하느냐에 따라 매달 수십억~수백억원의 매전(賣電)손실이 발생하므로 각 사가 최종 조정안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계통운영을 책임진 전력당국은 송전제약량과 발전사 손실이 최소화되는 방안을 폭넓게 검토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전력거래소 계통운영처 관계자는 “당진·태안지역은 부하수준에 따라 제약량이 달라지고 시뮬레이션 조건에 따라서도 제약총량과 발전기별 제약량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원칙은 모든 발전사가 충분히 타당성을 인정하는 수준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특정 발전사가 부담을 모두 떠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제약량이 최소화 되는 값을 찾기 위해 각 사의 제안을 충분히 수렴하고 틈새 방안도 최대한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전력당국과 이들 발전사가 어떤 해법을 도출할 지 비상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송전선로와 발전소 보강시점이 어긋나 대규모 발전제약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발전공기업대 민자발전사, 석탄화력대 LNG발전소로 나뉘고 있고, 지연사유(민원)를 떠나 일차적 사태 발발의 원인은 송전사업자의 송전선로 건설지연에 있어서다. 더욱이 향후 강원권에선 일정대로라면 2021년 신울진~신경기 HVDC(초고압직류송전선) 완공 이전 최소 6GW의 원전·석탄이 진입할 전망이어서 이번 협의가 향후 당사자간 이해조정의 전례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합리적 결론 도출 여부를 떠나 충분히 예견된 사태임에도 당국이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전의 송전선로 건설지연은 불가피성을 어느정도 인정하더라도 발전사들에게 수시로 충분한 건설진행 정보를 제공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며, 발전사들 역시 '어떻게든 되겠지' 발전소 적기건설에만 치중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송전설비 확충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수급계획을 수립, 사태의 근본원인을 제공했다는 시각이 많다.

전력계통 전문가는 "당분간 전력수급에 여유가 있는만큼 지금이라도 송전선로 건설일정을 재점검해 건설 예정 발전소 완공일정을 최대한 조정하고, 송변전주변지역 보상이나 지원수준을 좀 더 현실화해 한전이 건설일정을 최대한 앞당길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규제기구 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신기술을 도입해 기존 송전선로 이용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되 필요하다면 정부가 책임진다는 전제 아래 신뢰도 기준을 한시 유예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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