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체계개편 절차에 문제 제기…원전 사업허가도 첫 보류
중진 朴위원장 부임 이후 변화…전문가들 "독립성 부여해야"

▲ '과천 정부청사 시절 전기위원회 현판식' = 2008년 3월 옛 과청 정부청사 기술표준원 1층에서 당시 안철식 지경부 에너지자원실장, 김문환 전기위원회 위원장, 김경원 전기위 사무국장, 박수훈 전력거래소 이사장, 손양훈 위원(인천대 교수), 박동욱 전기연구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위원회 이전 현판식이 열렸다. 당시만 해도 전기위원회는 국장급 사무국장을 비롯해 4개과(課) 규모 외형을 갖추고 전력시장 경쟁시책 등 핵심업무를 담당했다. ⓒe2db

[이투뉴스] ‘거수기(擧手機) 위원회’란 비판을 받아 온 전기위원회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정부가 사실상 미리 결론 내린 안건을 짧은 시간 내 단순 심의·의결하는 식의 기존 프로세스에 대해 문제를 삼기 시작했고, 원전 신규건설처럼 정책전원 확충 사업이라도 사전검토가 미흡한 발전사업은 허가를 보류하는 등 기존과는 다른 규제 위원회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시절부터 이 분야의 합리적 고도화를 일관되게 주창해 온 ‘관록의 중진’ 박종근 위원장(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이 위원회를 이끌기 시작하면서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전기위원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현행 주택용 누진제를 3단계-3배(누진율)로 완화하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제3안)을 지난 8일 승인하고 이튿날 한전이 이사회에서 이를 의결함에 따라 금주중 전기위원회 최종심의를 마무리 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산업부가 심의안을 올리면 임시회를 열어 이를 의결할 것으로 보인다. 임시회는 13일 열릴 예정이다. 앞서 당정이 개편안을 이달부터 소급적용하겠다고 시한을 못박은 만큼, 외양상으로는 오는 22일 열기로 한 제196회 정례위원회 이전에 이를 속행 처리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마지막 행정절차에 해당하는 전기위원회 심의에 이르는 과정은 과거 위원회와 달랐다는 게 정부 안팎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달 30일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전기위원회 위원진에 면담을 요청, 개편안 내용을 설명하고 촉박한 일정 등에 대해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자리에서 일부 위원은 이번과 같은 톱다운식 요금체계 개편 논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불시 상정한 안을 위원회가 사실상 이의제기 없이 즉석 의결했던 기존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얘기다. 

전기위원회는 전력시장 경쟁체제 전환을 골자로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 통과로 2001년 설립된 독립기관 성격의 규제위원회다. 발전사업 허가는 물론 소비자 권익 보호와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 전기요금 조정 및 체계개편 등과 관련해 법적인 최종 의결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십수년간 산업부 소속으로 편제돼 위상과 규모, 독립성이 무력화 돼 온 것도 사실이다. 설립 당시 4개과(課) 규모였던 사무국은 본부 내 전력산업과나 전력진흥과로 대부분 정책 기능을 넘긴 채 현재 1개과로 외형만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7월 취임한 박종근 위원장은 위원회가 최소 규제 기능에서라도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조직 위상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이번 개편안 심의도 절차 등이 원칙대로 준수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전기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민간위원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위촉하며, 임기는 3년이다. 이를 두고 전력당국 한 관계자는 “중량급 인사가 위원장을 맡으면서 전기위원회가 모처럼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기위원회의 비교적 단순 행정업무로 인식되던 발전사업 허가 논의에서도 변화는 감지되고 있다. 앞서 지난 10월말 열린 제195차 위원회에서 전기위원회는 한수원이 신청한 ‘신한울 원전 3,4호기 발전사업 허가(안)’을 194차 회의에 이어 재보류 했다.

2023년말 준공예정인 이 원전의 이용 송전선로인 신한울~수도권 HVDC(건설예정) 계통의 안정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전기위원회 운영 이래 상정된 원전 사업기간 변경안이나 발전사업 허가안이 연거푸 의결보류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심의가 정밀해졌다는 해석이다.

정책 전문가들은 전기위원회의 이같은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체제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중앙집권체제에서 미국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나 영국에너지규제기구(Ofgem)와 같은 강력한 위원회 존립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유관기능을 수행하는 전기위원회가 지금보다 독립적이고 실질적인 규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개편에 관여한 한 인사는 “법적으로 전기위의 위상이 바뀐 것은 없지만 지금까지 집행권이나 규제권을 제대로 행사한 적이 없었고, 산업부가 실효적인 힘을 실어준 적도 없었다”면서 “현 구조는 규제위원회의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활동과 결정을 보장하는 해외 추세에 너무 뒤처져 있다. 최소 방송통신위원회나 금융감독위원회 수준으로 위상과 역할을 격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경 모 대학의 B교수는 “새 정부 출범 시 규제개혁 및 소비자 권익보호와 참여보장 관점에서라도 전기위원회 독립과 역할 강화 방안이 반드시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산업부는 여전히 과거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 우태희 산업부 차관은 지난 9월 국회 산업위 회의에서 손금주 국민의당 간사 의원이 “전기위원회가 산업부에 종속돼 견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위원회 위치를 독립적으로 격상시킬 의사가 없느냐”고 묻자 “현재는, 아직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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